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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 듣는 아이... 이 녀석을 때려? 말어?
등록일 2013.07.08  
아이 키우기 무서운 세상이다. 언론을 보면 한 달이 멀다 하고 나오는 소식 중의 하나가 바로 '어린이집 유아 폭행' 사건인데, 이는 5살, 3살, 1살의 유아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입장에서 최악의 뉴스가 아닐 수 없다. 다섯 살도 안 되는 아이가 맞아 피멍이 들고, 말도 하지 못 하는 아이가 수면제를 먹고 잠든다는 등의 끔직한 뉴스들.

물론 모든 어린이집이 그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가진 부모들은 위 소식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사회의 가장 약자인 유아를 폭행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끔찍함도 있겠지만 구조적으로 나의 아이가 그 당사자가 될 가능성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턱없이 부족한 보육시설을 보자. 현재 우리 사회의 보육시설, 그 중에서도 국공립 어린이집은 매우 모자란 형편이다. 예컨대 우리 집의 경우 5살 까꿍이와 3살 산들이는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번호 200번대이며, 1살 복댕이는 300번대이다. 정치권은 꽤 오래 전부터 주된 선거 공약으로 국공립 어린이집 증설을 외치고 있지만, 항상 말로만 그치고 마는 형국이다.

▲ 만행 뒤 단잠 부모도 때리고 싶다
ⓒ 정가람
따라서 현재 많은 부모들은 국공립 어린이집보다 훨씬 비싼 비용을 내고 사립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공립 어린이집만큼 양질의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에서는 지원을 해준다고 생색을 내지만, 실제 사립 보육기관들은 국가의 지원 외에 별도 비용을 추가로 청구하며, 사립 보육기관의 교사들은 국공립 보육기관 교사들과 비교하여 형편없는 월급과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 보육시설 자체가 모자라다 보니 이러한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 부모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립 보육시설에 아이를 맡겼지만, 그 소속 교사들의 처우가 엉망이라면 그들 역시 사람인 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아이들을 때린 교사들의 비도덕성만을 비난하지만, 우리는 그와 함께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구조적인 이유 역시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국공립 보육시설이 많아진다면 어린이집의 유아 폭행 사건은 사라질까?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 역시 그다지 긍정적이지는 않다. 물론 폭행 사례는 대폭 줄어들겠지만 유아 폭행이 100% 근절되기는 어렵다. 왜? 우리 사회는 그만큼 폭행에 관대한 곳이기 때문이다.

일상화된 가정에서의 체벌

▲ 누나 내놔 생떼 부리는 둘째
ⓒ 정가람

▲ 떼 쓰다 지쳐 잠이 든 아이 잘 때만 천사
ⓒ 정가람

앞서 언급했듯이 어린이집 유아 폭행에 관해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것은 그 대상이 유아이기 때문일 뿐, 폭행 자체에 대한 거부반응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그 유아가 초등학생이 되고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여실히 드러나는데, 가정과 학교에서 가해지는 공공연한 폭행, 소위 '사랑의 매'라는 역설의 존재가 이를 증명한다.

'사랑의 매'가 무엇인가. 말이 좋아 사랑이지 그것은 결국 체벌이 훈육에 있어서 효과적이라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암묵적 합의이다. 비록 최근에 와서는 학생들의 인권 등을 운운하며 체벌을 중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꽤 높은 편이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 '맞아야 정신 차린다'라는 명제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때려서라도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 한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할 것은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경우이다. 그것은 분명 폭행이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부모의 고유 권한으로 여겨져 방치된다. 체벌이 서구와 다른 우리들의 전통적인 훈육방식으로서 여기지는 바, 가정에서부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폭행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 체벌 대신 손들기 엄마 표 훈육
ⓒ 이희동

▲ 언제 어디서나 손들어 잘못했어요 엄마
ⓒ 이희동

▲ 나만 가지고 그래 울상 산들이
ⓒ 이희동
당장 우리 집의 사례를 보자. 3살 산들이의 경우 벌써 내게 두 번이나 맞은 바 있다. 첫 번째는 일어나서 아무 이유 없이 누나를 때렸으면서도 사과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요, 두 번째는 강가에서 돌을 던지며 놀다가 그만 가자는 부모의 말에 응하지 않고 떼쓰며 울었기 때문인데, 그 결과 난 두 차례나 3살, 그 어린 것의 허벅지에 시퍼런 피멍이 들게 만들었다. 아비로서 당연히 마음은 쓰라렸지만, 말로 해도 되지 않으면 따끔히 혼낼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서 한 행동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체벌의 효과는 있었을까? 겉으로 보기에 산들이의 반응이 달라진 것은 분명했다. 첫 번째의 경우 산들이는 2시간이 지나도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지만,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달리 이내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만큼 체벌의 두려움을 알았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그렇다고 녀석의 행동거지가 많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녀석은 여전히 가끔 누나를 때리고 또한 자주 떼쓰고 운다. 물론 내가 엄한 소리를 하면 이전에 비해 금방 그치고 말지만 그것이 체벌의 효과인지, 조금 더 성숙해진 녀석의 이성 때문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결국 난 확실치 않은 결과를 보고자 그 어린 것의 허벅지에 피멍을 들게 했다는 자책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언론에서는 어린이집 교사의 유아 폭행이 천인공노할 일이라 떠들어댔지만 난 감히 그들을 앞서서 비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못 참아서 아이들을 때릴 정도였는데 남이야 오죽했을까. 어쩌면 사회적으로 이런 폭행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나의 경우와 같이 가정에서의 체벌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 녀석을 때려? 말어?

▲ 엄마 나 이뻐? 제발 산들아
ⓒ 정가람
그렇다면 아이들을 때리지 않는 것이 정답일까? 문제는 이 역시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서구의 예를 들며 굳이 체벌을 하지 않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조곤조곤 설명을 해도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듯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현실 속에서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바람일 뿐이다. 아이가 공적인 장소에서 지금 당장 말도 안 되는 생떼를 쓰며 죽어라 울어젖히는데 어찌 그리 속 편하게 아이를 설득할 수 있단 말인가.
실제로 부모들이 체벌을 하지 않을 경우를 보자. 아이들을 끝까지 타이르기보다는 아이들이 제풀에 꺾일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 다반사이며,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기제, 예컨대 '그러면 병원 간다' 등을 이용하여 윽박지르기도 한다. 과연 그과 같은 방법이 자신의 잘못을 따끔히 각인시킬 수 있는 체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중고등학교 시절 야비한 꾸짖음보다는 차라리 한 대 시원하게 때리던 선생님을 좋아한 적은 없었던가?

▲ 잘못했어요 엄마 손들기는 힘들어
ⓒ 정가람
나의 경험담을 보자. 나의 경우는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받았던 체벌이 큰 약이 되었던 사례로서, 난 아직도 아버지한테 처음으로 맞았던 5살 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난 그때 어머니가 목소리 톤만 올려도 무서워했던 반면 아버지는 항상 인자하셨던 만큼 만만하게 보았다(아버지가 회초리를 들면 그 회초리를 맞잡고 아버지를 째려보며 식식거렸던 장면을 내가 기억할 정도이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아이를 이렇게 키우다가는 안 겠다는 생각에 제대로 나를 체벌한 것이다.
이후 나의 아버지에 대한 관념은 180도 달라졌다. 아버지가 가정적이고 인자하다는 사실은 변치 않았지만, 아버지가 화를 내면 어머니보다 무섭다는 생각이 각인되었고, 덕분에 아버지의 화난 목소리는 나의 마지막 제어판이 되었다. 특히 아버지는 당신의 훈육 범위를 나의 생각이 아닌 생활습관이나 예의범절로 한정지으셨는데, 이는 이후 부자관계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다. 자식의 자유의지에 대한 아버지의 믿음은 내게 아버지에 대한 절대 신뢰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자식을 키우면서 절감하는 것 중의 하나는 나의 육아방식이 어렸을 때 우리 부모로부터 겪은 육아방식으로부터 절대 자유롭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한다. 이 녀석을 때려? 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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